대리만족의 시대
최근 가상현실의 전단계로서 증강현실의 상용화되려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조만간 상용화 모델인 HoloLens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기술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가상현실이다. 인간이 가지는 오감을 재현해 냄으로써 실재로 경험한 것과 같은 경험을 가상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같은 기술들은 인간이 상상해 오던 것을 기술로 현실화 시킨 것이다. 인간이 가상현실을 상상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블레이드 러너
같은 영화에서 가상현실을 통해 화성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묘사된다. 주인공은 가만히 앉아 화성의 풍광을 구경하며 사람들과 만난다.
가상현실로 대표되는 인간의 욕구는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만족하고 싶은 욕구. 문학, 영화, TV의 존재 역시 이러한 욕구에 얼마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근래에 TV 예능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가상현실을 탐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년 전부터 ‘먹방’으로 대표되는 맛집 기행, 혹은 맛있는 음식을 소재로한 프로그램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이후에는 연애인들이 나와 게임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내용의 프로그램들이 주말 황금 시간대를 차지했고, 또 가상연애 프로그램이 생기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스타들의 모습이 성황 중이다. 대세는 아니지만 집을 가꾸고 꾸미는 코너들도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재미있다.
그러나 남들 먹는 모습, 재미 있게 노는 모습, 아이 키우는 모습, 집 예쁘게 꾸미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들이 즐겁게 먹고 놀고, 예쁘게 아이를 키우고 집을 꾸미는 모습일 망정 재미있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 혹자는 생각이 너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 몇년 현실이 살기 어려워 질 수록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 늘어가고 더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삶에서 얻지 못하는 만족을 브라운관 안에서 얻고 있으며 이미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진지하게 인식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이것이 원시적인 형태의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가상현실이 기술적으로 가능해 진다면 우리가 보는 TV 프로그램 속의 모습들은 우리 자신으로 치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이 좋다 나쁘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소설 속에서 금지된 사람을 하고, 영화 속에서 미래로 떠나며, 만화 속에서 초능력을 발휘한다. 이것들은 모두 현실 밖의 상상이다. 하지만 지금 TV가 보여주는 가상현실은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이고 능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수박맛과 커피맛을 더한 맛있는 케익을 상상하는 것과 쇼윈도 속에 실재하는 케익을 동경하는 것은 다르다. 건강을 위해 달디 단 케익을 먹지 않는 것과, 살 돈이 없어 먹지 못하는 것도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