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남용', 개념의 인플레이션
아이 초등학교를 따라 갔다가 크게 놀란 일이 있다. 학교에서의 인사말인데, 학생들이 선생님께 먼저 존경합니다.
하고 인사하면, 선생님이 학생에게 사랑합니다.
하고 인사한다. 학교에서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 이것은 흡사 군대에서의 “충성”, “멸공” 같은 경례로 보였다.
언어를 적확하지 않게 사용하지 않고 남용하게 되면, 개념의 왜곡을 초래하게 된다. 언어의 풍광(the landscape of language)
을 만들어 나갈 나이의 아이들은 극단적으로 부모 세대와 다른 의미로 언어를 사용할런지도 모른다.
나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았을 때 모든 선생님이 내가 존경할만하지도 않았고 나를 사랑하지도 않았다. 존경이 없는데 존경한다 하고 사랑이 없는 데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존경
이나 사랑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잘 사용할 수 있게 될까? 자신의 소중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아무때나 쏟아내고 나면, 우리 아이들이 커서 진정 존경을 표시해야 할 때 사랑을 표현해야 할 때 어떤 단어를 써야 할까? respect, love 같은 영어를 써야 할까?
그냥 우리 아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는 철수와 영희의 인사말을 사용하게 하자. 훗날 졸업생으로 찾아와 선생님께 드릴 감사의 표현으로 ‘존경’이란 단어를 남겨두자. 말썽피우던 아이가 장성해 듬직해 졌을 때 그래서 내가 너희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노라고 말할 선생님들을 위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겨두자.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트를 날리는 최초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조금 불편하다. 나의 언어를 빼앗기는 것 같아서.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하지 말자. 정 섭섭하면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자. 침묵하는 자에게 언어를 강요하지 말고 거짓된 언어를 쓰는 자를 용서하지 말자.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LOG
2019-02-09-upd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