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오염', 앞으로 쓰지 못할 단어들

“언어의 오염”

“언어의 오염”은 내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언어의 의미는 사회 속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단어라도 사람들이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단어는 이전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된다.

비유컨대 상인들이 개고기를 ‘양고기’라고 팔아 시장 사람들이 급기야 ‘양고기’하면 ‘개고기’를 떠올리게 되는 상황이다. 더이상 ‘양고기’는 양고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는 양고기를 가리키고 싶을 때 생겨난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런 오염행위는 크게 보면 사회에서 해당 언어를 사멸시킨다. 언어의 사멸은 개념의 사멸을 이끈다.

이미 그러한 예가 있다. 동무, 노동, 인민 같은 단어들이다. 모두 가치중립적인 단어들이었으나 이념의 대립 과정에서 오염되어 한국에서는 좀처럼 쓰이지 않게 되었다.

최근 10년 한국에서 살면서 언어의 오염이 예전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양상도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 과정을 일반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에게 행동을 촉구할 목적으로 되도록 참신하고 좋은 이미지의 ‘언어’를 선택함
  2. 해당 언어를 선전과 설득에 이용하여 행동을 이끌어냄
  3. 그런데 그 행동의 본질이 선택된 언어와 일치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정반대로 나타남
  4. 해당 언어의 오염이 일어나 더 이상 이전 뜻으로 해당 언어를 사용할 수 없게됨

내가 이런 과정을 거쳐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녹색성장, 그린, 살리기
창조경제, 개혁, 새로운
진실, 거짓
"정치생명을 걸고 ... "
경제민주화

이들 단어들은 정치적으로 남용되어 본질을 잃어버린 불쌍한 단어들이다. 아마도 이 가운데 녹색이나 창조 같은 단어들은 한 세대 정도는 제대로 쓰이지 못할 것 같다.

단어가 오염되면 담겨있던 이미지는 더이상 통용될 수 없다. 마치 컴퓨터의 파일 손상되면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는 것 처럼 말이다. 파일이 열리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내용 역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언어는 공공재이다. 공동체가 가지는 개념의 총체이다. 어떤 일부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특정 단어를 망치고 오염시킴으로써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을 왜곡시킨다면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예전에 한 기업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기업은 노조가 만들어기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직원들을 미행하고, 직원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어떤 직장에서도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최근(2019년) 불거지고 있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슈들, 그리고 그 전에 있었던 태극기를 들고 진행된 극우 집회들 역시 “페미니즘”이 가진 가치, “태극기”가 담고 있는 이미지를 천천히 오염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폐미니즘에서 진보적인 가치는 머지 않아 탈색될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행사에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흔드는 장관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될런지도 모른다.

단어에 담긴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탈색시키거나 오염시켜서 우리 사회에서 그 이미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 모두는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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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9-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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