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체험기

옥아,

아침에 무기력하고 침울하다. 움직이거나 밖에 나가기 싫다. 작년부터 빠져 있는 수렁이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 봉착했을 때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업무 스트레스로 번아웃 된 것인가,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아이를 좀 키워 놓으니 편안해 져서 늘어진 것인가, 그냥 나이가 그럴 때인가. 해답 없는 질문의 해답을 찾다가 문득 현실에서 눈을 피해 원인이라는 미로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되찾아 온다.

가파른 계곡길을 스스로 독려하며 올라왔고 지금은 하늘이 보이는 완만한 능선에 이르러 숨을 좀 돌릴 때다. 막연히 이 곳 정도에 이르면 ‘무언가’ 있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없더라. 편안함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삶은 명료해지고 마음은 평화로와 질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삶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단순해지고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책을 보고 지식이 늘어 가는 것이 좋았다. 책 속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었다.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지혜와 성공의 방법과 천국에 가는 방법까지. 하지만 책 속의 지식은 ‘간접’ 경험으로 ‘직접’ 경험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컸다. 어느새 내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거나 어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았다거나 하는 류가 되어버렸다. 그마저도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본 말인지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소화하지도 못할 남의 경험들을 주워 모으는 것이 지식에 대한 허영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헌책방에서 얻은 설명서를 보고 제품의 모습과 기능을 상상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 예전에 알지 못하던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현실의 나는 오늘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걷고 또 걷고 있다.

상당히 즐거운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난 것 같다.

옥아, 나는 평범하다. 하지만 비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친구들 보다 공부도 잘 했고 새로 배우는 것들도 곧잘 했다. 하지만 세상은 온갖 비범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인터넷과 TV는 나에게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 노력을 경주한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 목표가 뚜렸한 사람, 욕망에 충실한 사람. 비범해진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다.

나이를 먹어 간다.

삶은 학교가 아니다. 정해진 과목도 시험범위도 없다. ‘자기’라는 배에 몸을 싣고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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