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먼나라 이야기, 사회의 암(癌)적인 존재

“사회의 암(癌)적인 존재”

암은 불치병의 대명사이다.

암은 비유에도 많이 사용된다.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표현이다. 주로 흉악 범죄자나 인면수심의 반인륜 범죄자에게 사용된다. 하지만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의 죄는 분명 무겁지만 “암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암은 한 개체 안에 통제를 벗어난 독자성을 띄는 세포집단이다. 이들은 개체를 위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증식한다. 혈관을 끌어 오고 영양분을 독점하며 영역을 확장한다. 주변의 장기가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개체는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암도 개체의 소멸과 함께 죽는다.

대학 수업에서 조별 과제는 짦은 기간 내에 학생들에게 희노애락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다. A조에, 그 조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구성원X가 있다고 하자. X는 다른 조원을 고려하지 않고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 나오고 싶지 않으면 나오지 않으며,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이 경우 X는 비유컨대 “A 조의 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A조가 맞게되는 결과는 딱 3가지다.

가) 조장이 독박 써서 힘겹게 평가를 받는다. 나) X 이외의 조원들이 힘을 합쳐 평가를 받는다. 다) 총대 매는 사람이 없어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사실 조별 과제는 사회 현상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다. X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유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총대를 매는 사람들은 X보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이 조의 운명을 지탱한다는 점에서 보면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의 경우는 매우 비극적이다.

저기 멀고먼나라가 있다. 이 멀고먼나라 안에는 멀고먼나라의 운명과 상관 없이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 X가 있다고 한다. 집단 X는 멀고먼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집단 X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집단 X가 우리 동네 막걸리 모임 같은 규모라면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국민 개개인은 나라의 이해에 따라 삶이 좌우되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구분해 생각하기 힘들다.

“암적인 존재”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집단은 강력한 힘을 보유한 집단이다. 암이 주변 혈관을 끌어 모아 영양분을 독점하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 모으는 집단, 혹은 암이 주변 기관을 아랑곳 하지 않고 활동 하듯 정치적인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집단이다.

사실 이들은 잃을 것이 많다. 앞의 조별 과제의 경우와 다른 부분이다.

암이 누구에게나 생겨날 수 있듯 암적인 존재는 어떤 사회에나 생겨날 수 있다. 문제는 암을 제거할 수 있냐는 점이다. 가장 좋은 경우는 개체의 면역력으로 암을 제거하듯, 사회 내부의 자정능력으로 암적인 존재를 응징하는 것이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외부적인 요법이나 수술로 암을 제거하듯 외부의 힘을 빌려 암적인 존재를 쫓아 내는 것이다.

이 멀고먼나라에는 스스로 암적인 존재들을 제거할만한 자정능력이 남아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고 싶지만, 점점 더 그럴 수 없게 된다.

암적인 존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이 맘껏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는 멀고먼나라라는 개체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개체가 죽으면 암도 소멸하듯, 멀고먼나라가 무너지면 더이상 개돼지 취급하면 수탈할 국민들도 뒤를 봐줄 친구들도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단지 사회의 이방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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