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디

최근 같이 일하던 분께서 불안장애 때문에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전해 오셨다. 업무적으로는 진행하던 일이 갑자기 중단되어 곤란해 졌지만, 그보다 그 분의 상황이 더 걱정되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나 역시 지난 몇 해동안 늘어난 업무와 책임 때문에 몸과 마음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많던 머리 숱이 눈에 띄게 줄었고, 머리만 붙이면 잘 자던 잠도 개운치 않다. 늘 책을 즐려 읽어 왔는데, 이제는 만성적으로 피로해 여가 시간엔 책에 눈을 두기 힘들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지만, 뭔가 한 고비를 넘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사람마다 burnout되었다거나 무기력 하다거나 늘 피로하다거나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심리적으로 절박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학술적으로야 이것과 저것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대인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듯 하다.

예전만 해도 남성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라는 것이 과로사, 심장마비, 성인병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은 여기에 불안장애 혹은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적인 문제들이 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릴적 TV 뉴스에서 과로로 숨진 셀러리맨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보았던 기억이 있다. 매스컴에서는 이러한 “중년의 위기”를 종종 언급하면서 경제 성장의 희생량으로 사회에 반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병들어 가고 있지만 육체적 정신적 건강 관리도 개인의 능력으로 여겨진다.

개인의 건강이 전적으로 사회의 책임이 아니듯,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어서도 안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개인의 건강은 사회와는 단절된 듯 하다. 노동자들은 근무 환경 개선이나 근무 시간 조정을 요구하지만 사회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이제 개인들은 시간을 쪼개어 산에 오르고 거리를 달린다. 서울에서 주말에 산에 가보면 활기 차다기 보다는 애틋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더 좋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려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쟁은 심해지고 생존은 어렵다. 퇴직은 빠르고 노후는 길다. 내일이 오늘 보다 더 좋다는 막연한 기대도 가질 수 없다. 고민을 토로하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도 없다.

외롭고 불안한다.


삶에는 마디가 있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낙엽이 지듯,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어떤 시기가 되면 몸과 마음이 변하게 된다. 이 마디와 마디 사이에서 자칫 마음이 무너지거나 몸이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부디 마디가 맺힐 때 까지 버티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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