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짐을 풀면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옥아,

이사를 앞두고 미리 짐 정리를 좀 했어.

아주 오랬동안 가지고 있었던 파일들을 정리했는데, 거의 대부분 버리기로 마음 먹었어.

내가 한 때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버려야할 종이일 뿐이구나.

안타깝다 못해 슬펐어.


나이가 들면 이해되는 것들이 많아.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변절하곤 해.

독립운동가가 친일파가 되고 민주투사가 국민을 배신하는 타락한 권력가로 변한 예는 적지 않아.

요즘 그게 이해가 되.

그들은 희망을 상실했던 거야.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때, 타락한 재벌과 부패한 권력의 두께를 체감했을 때

그들은 변절한 거야.


예전에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참 무감각했어. 아무 느낌이 없었지.

하지만 돌아보니, 내가 깨닫지 못했었을 뿐 그 희망이 나에게 큰 힘이었구나 싶어.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하겠지만,

그 답답한 학창시절을 수도승처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엉덩이가 아프도록 책상에 앉아 한우충동한 참고서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던 일도.

늦은 밤 동무들과 진리와 삶에 대해 개똥철학을 나누며 서로 맞다 틀리다 언쟁을 하던 것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너 없이는 살 수 없다 이성에 대해 부푼 감정을 품었던 것도.

이 모든 일들이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

막연하지만 대학에 가면 사회에 나가면, 그렇게 나이를 더 먹으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이 있어서.

하지만 요즘에는 이 희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슬픈 느낌이 들어.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


오늘 짐을 정리하다가 찾아낸 것은

잊고 있었던 노트나 사진 뿐만이 아니었어.

희망을 거의 잃어 버린, 젊은 나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중년의 나였어.


이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다보면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찾는 일이 종종 있지.

옥아, 그처럼 나도 짐을 풀고 나면 희망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겁이 나고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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