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되다.

옥아,

한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살고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장대한 우주에서 무에서 다시 무로 돌아갔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 물방울로서, 다행히 후손을 생산해 장성 시켰다면 최소한 자연이 부여한 임무는 완수한 셈이겠지.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부여하려는 노력 자체가 인간성을 드러내는 대목이겠지만, 내친 김에 좀 더 “인간”이라는 견지에서 말하자면 개인으로서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누군가에게 추억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적막한 길을 걸을 때, 쌀쌀한 밤 공기를 맡을 때, 아침에 해 뜨는 모습을 볼 때, 계절이 돌아와 기억이 밴 목도리나 장갑을 다시 대할 때. 그럴 때 떠오르는 얼굴, 생각나는 장면이 있지.

지울 수 없는 그 기억들 속에서 나는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아련히 다시 느끼곤 한다. 아마 그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회상하고 지금의 내가 그런 이야기들의 마지막 장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지.

때때로 오랜 지인들과 이야기 할 때, 나도 그들의 마음 속에 작은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 때가 있어. 그가 예전에 나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거나 내가 했던 행동을 묘사해 주는 경우지. 나는 이미 잊은 일이지만, 아니 애당초 인식하지 못했던 사건이지만 그의 기억에 분명히 남아 있는 그 흔적을 느낄 때 아 헛 살아 온 것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돼.

옥아, 자신이 누군가의 가슴에 남긴 유산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주관적이기 때문일거야.

사람은 주관적이야. 객관성의 시대, 과학의 시대에서 주관성은 어느새 부정적인 단어가 되어 버렸지. 객관적인 팩트로 사건을 묘사해야 하고, 객관적인 수치로 자연을 서술해야 해.

하지만 너와 내가 생각이 같고 똑같이 기억한다면 아무도 타인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유산을 남길 수 없을꺼야. 그리고 나 모르게 회상되거나 그 모르게 회상하는 일도 없겠지.

주관적이기 때문에 평범한 인사가 아름다운 첫만남으로 기억되기도 하고, 단순한 호의가 친절한 배려로 기억되기도 하지. 심지어 땀 냄새를 향수로 오해하기도 하고, 부은 얼굴을 사랑스러웠다 기억하기도 해.

자신이 남긴 유산을 누군가 이야기 해 주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하지만 우리는 경쟁을 위한 경쟁이라는 덫에 빠져 추억을 만들고 나누는 방법을 망각하고 있어.

경쟁은 아주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향해 강요했어. 처음에는 눈치를 보며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지만, 머지 않아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려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지. 하지만 옥아, 많은 돈과 강한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누군가의 마음 속에 추억되는 기회를 잃는다면, 누군가의 마음 속에 진저리 치는 기억으로 각인된다면 그들은 무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을꺼야.

때때로 나 스스로 가치가 없거나 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지. 그 느낌은 왜곡된 것이지만, 만약 그 느낌이 진실을 가리킨다 하더라도, 옥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우리는 많은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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