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기술자들을 잉태하고 키워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 사람으로서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이다. 질병을 다루는 의술이나 음식을 만드는 조리처럼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기술일 수록 유리하다. 이런 기술들은 어느 사회나 시대에 크게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수요가 많다. 그래서 경쟁자가 많아도 기술을 가지고 사회 속에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술이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짖는 기술은 오늘날 너무 평가 절하되어 있으며, 프로그래밍 기술은 그 어느때 보다 호황 중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가치는 공부이다. 공부도 하나의 기술이다. 특히 학교 공부는 더욱 그렇다. 학교 공부는 ‘시험’이라는 경기이고, 이 경기에 유달리 최적화 되어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노래를 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공부는 생존에 필수적인 기술은 아니다. 전쟁이 나면 가장 생존 확률이 높은 직업 가운데 하나가 자동차 정비공이라고 한다. 아마 사회가 어려워 진다면 농사 기술의 가치도 더 높아질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갔다는 것은 아주 안정된 사회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아직도 사교육 열풍이 식을 줄 모르지만, 공부에 대한 시각은 조금씩 교정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학력이 더 이상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자본시장에서 자본을 모으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경험히 하나 둘 쌓이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전문 기술자가 우대받게 될까? 그들이 자본 시장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 당분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 사회는 전문 기술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 기술자가 그만큼 대가를 받는 구조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에 대한 인건비가 나오기 어려운 사회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물건에 대한 값은 높지만 서비스에 대한 값에는 인색한 편이다. 아마 음식 배달을 시킬 때 배달비를 따로 받는다면 야박하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기술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값을 온전히 책정하기 어렵다.
전문 기술자로서 자기 인건비를 어느 정도 보상 받으려면 개업을 하여 사장이 되는 방법 밖에 없다. 개업을 한 전문 기술자는 이내 경영을 하게 되고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실무를 위해 다른 기술자들을 고용한다고 해도 높은 임대료 때문에 충분한 대가를 줄 수 없다.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업 구조가 그렇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고용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기술 서비스의 질은 더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많은 기술자들이 기술에 몰두하기 보다는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다.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많은 강사들이 있다. 그들이 현업이 아니라 강의실에 있는 것은 기술자들이 인건비를 가져가기 힘든 사회 구조를 방증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강의를 많이 하는 전문가를 의심하다. 주식을 잘 하는 전문가의 강의. 생각해 보면 강의로 인한 수입보다 자기 기술을 활용해서 버는 수입이 더 많다면 누가 손해를 보면서 강의를 하겠는가.
최근 가장 유망한 기술은 프로그래밍이다. 앞으로 당분간 그러할 것이다. 국가에서도 코딩 조기 교육을 해야 한다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개발자들의 상황은 열악하다. 대부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페이는 짜다. 가장 유망한 기술에서 조차 인건비를 못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코딩 조기 교육이 성공한다면 아마 미국에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셈이 될 것이다. 그들이 커서 모두 미국으로 취업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나라를 ‘모순’이라는 단어로 이해하고 있다. 앞뒤가 잘 안 맞는다는 말이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전문 기술은 개인의 큰 자산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기술에 대한 수요는 늘 있다. 그래서 전문 기술을 쌓으면 좋을 것 같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잘 안맞는다. 전문 기술을 가진 노동자가 충분한 인건비를 가져가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재화보다 용역 가치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다. 그리고 전문 기술자들이 가져가야 할 보상을 상당 부분 임대업자가 가져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