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삶과 바꿔야 했던 일들의 가치

옥아,

무언가 힘껏 노력을 쏟아 붓게 되면 필경 한뼘 씩 늙게 되더구나.

젊을 때는 몰랐지만, 중년에 이르니 힘든 일이나 어려운 과제를 넘길 때마다 한풀 한풀 꺽이는 것이 느껴진다.

집중해서 오랜 시간 하나만 하게 되면 성취를 얻는 대신 수명을 줄이게 되는 것 같다.

옥아,

돌아보니 내 삶에도 힘에 힘을 보태 필사적으로 무언가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 가기 위해 엉덩이에 땀띠가 나도록 공부 했던 수 년의 시간들, 대학 때 잠을 줄여가며 몇 주씩 했던 과제와 시험 준비들, 사회 초년에 일을 한다는 것이 즐거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 했던 시간들.

돌아보면 대부분 시험 준비였고, 단순히 종이에 글을 적는 일들이었다. 물론 그런 노력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된 것이지만.

하지만 옥아, 지금 돌아보니 그 시험들이, 그 일들이 내 삶의 정기를 쏟아 부을 만큼 가치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으로 나는 매우 괴롭다.

옥아,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젊은이들이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필사적이란다.

그들이 쏟아 붓는 생명의 에너지가 과연 그 일이 가지는 가치에 합당한 것일까.

고작 한 문제를 더 맞추기 위해, 목적이 성취되면 아무 짝에도 쓸 수 없는 단편적인 지식 하나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옥아,

필사적으로 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이기에 삶에서 몇 번 밖에 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기회들을 시험을 보고 아무도 보지 않는 논문을 쓰고 회사에 잡무를 하며 소진했던 것이다.

그 일들이 모두 무가치했다는 말이 아니다. 해야 했던 일이고 하면 좋았을 일이다.

다만 그 일들이 내가 전력을 다해야 했던 일이었을까 하는 회의다.

지금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지 않는, 필사적이었던 나의 순간은 아이를 키워야 했던 기간 뿐이다.

옥아

그래서 나는 당분간 다시 무언가를 위해 전력으로 달리지 못할 것 같구나.

그럴 힘도 없거니와 그럴만큼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일도 지금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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