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인 아론)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최근에 심리학 관련 서적을 좀 멀리하고 있었는데,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민감한(Sensitive)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이런 문제로 삶이 힘겨웠던 탓인지 유독 “우리”라는 1인칭 대명사가 자주 보인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 같이 민감한(Sensitive) 사람들은 자주 편견과 오해 속에 살아가지만,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며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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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든지, 큰 소리에 불편해 진다든지, 자주 지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수적이라든지 하는 묘사이다. 이런 나의 기질은 가족들 사이에서 “이상하다”고 여겨져 왔다. 가족들이 야심차게 계획했던 나들이나 외식에 나는 종종 “집에 있겠다”는 식으로 김을 빼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족들은 “너는 왜 그렇게 이상하니”라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못마땅한 감정을 부드러운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어린 나는 그 말 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표현에서 상당한 자기 부정을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너는 왜 그러니”라든지 “너는 이상해”라는 평가를 받으면 감정이 동요한다.
저자는 또 민감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든지 감정을 동요시키는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내가 그랬다. 어려서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팠고,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늘 울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방에서 동영상을 보다가 혼자 울고 그런다. 그래서 그럴 것으로 예상되는 장면들은 보지 않는 편이다.
사람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잘 믿는 편이어서 대학에 다닐 때 몇 번 사기를 당했다. 나의 영혼이 아름답던 시절은 이 사건들로 끝이 났고, 지금은 반대로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많이 경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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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가 제안한 2가지 방법에 동의한다. 과거 기억에 대한 재구성(reframe)
과 미래에 대한 점진적인 도전
이 그것이다. 나의 특성과 주변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과거의 기억을 다시 회상해 보면 새롭게 인식되는 일이 제법 많다. 그러면 그 사건에 얽힌 감정도 변하게 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에 대한 감정과 나의 반응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바꿀 수 있다.
나는 “재구성” 보다는 “재양육(re-parented)”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어른이 된 내가 나의 내면아이를 다시 기르는 것이 재양육이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나의 부모와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감정으로부터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육아는 힘들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내 자신의 내면아이도 함께 키울 수 있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민감한 사람들은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남들 따라 무작정 도전했다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은 일들 부터 조금씩 도전해서 자극에 익숙해져서 그 일을 해내는 성공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 성공의 경험은 조금씩 더 큰 일들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많이 움직일 수록 점차 쉬워지고 덜 긴장하게 된다.”(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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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본인보다 민감한 아이를 둔 부모나 민감한 사람의 배우자가 읽어두는 편이 더 좋겠다 싶다.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과 좀 다르며 자극에 약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있고 나름의 생존전략도 몇가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은 상처가 되기 쉽다. 설명해도 잘 이해받지 못한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을 유독 즐긴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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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책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책에 적혀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인용해 둔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평생 밤낮으로 명상만 하면서 살겠다고 동굴로 들어간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참을 수 없어서 곧 다시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p.103)
‘타인’도 3인칭이고 ‘사람’도 3인칭이여서 제목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진다. 원제는 “The Highly Sensitive Person”인데, 번역을 이렇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