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화된 논리

인간은 자기 이익에 충실하지만, 때때로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자기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도 그것이 자기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교육수준이 낮고 소득이 적은 계층이 고소득층의 이익을 위한 주장에 찬동한다든지, 큰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기업 오너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다.

모두 자기 자신도 모른 채 타자화 된 논리가 내면화 된 경우이다.

상대가 타자화된 논리로 타자화된 주장을 펼칠 때, 나는 화가 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머지 않아 스스로도 자기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주장이 모순을 일으킨다고 느낀다. 하지만 모순을 인정하기 보다는 대의를 위한 주장으로 합리화 한다. 자기 자신은 좀 손해 보더라도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그러해야 한다는 쪽으로 …

우리는 주로 이기적이지만 때때로 이타적어야 한다. 하지만 이타를 표방한 타자화는 경계해야 한다.

어쩌면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고유한 논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우리가 읽고 듣는 것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각하는 힘이 있다. 보고 들은 것들을 나의 가치관 속에서 판단하고 평가하여 재구성하거나 혹은 그로부터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타자화된 논리는 쉽다. 모든 것이 잘 차려진 밥상과 같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쉽다. 무도한 위정자들이 중우(衆愚)를 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타자화된 논리는 받아들이기 쉽지만 위험하다.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기 때문이다. 타자화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이 오염되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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