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님아, 주인의식을 가지라 기만하지 말고 동지가 되어달라 설득하라.
“동지(同志)”, 참 가슴 뛰는 말 아닌가. 서로 다른 날 다른 곳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로 같은 뜻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니 말이다. (주인장)
리더가 품귀한 사회
우리나라에서 명예란 높은 직위에 올라가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높은 직위에 오르면 권한도 많아지고 월급도 많아진다. 그리고 편해진다.
하지만 리더는 편한 자리가 아니다. 권한이 많기 때문에 남다른 비전을 제시해야하고, 권한이 많기 때문에 권한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좋은 대우와 월급은 그 고민과 책임에 대한 반대급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직위의 사람들에게 뛰어난 비전이 있는지 묻지 않는다. 직위를 맡는 도중이나 맡고 난 다음에 결정이나 권한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지도 않는다. 그보다 논공행상의 결과로 부여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리더 품귀 사회
이다.
모두가 함께 책임 지자는 물타기
그러다 보니 기관의 장들이 취임식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여러분이 이 기관의 주인이니, 주인의식을 가지세요”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다. 학창시절 교장과 선생들로부터, 회사에서 경영진으로 부터.
하지만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주인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인으로서의 권한과 의무를 가진 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학생과 노동자는 학교나 회사에서 특별한 권한이 없다. 따라서 청자인 '여러분'은 주인이 아니다
.
그럼에도 기관장들이 주인의식을 들먹이는 것은 아래와 같은 의미이다.
“주인처럼 착각하고 주인으로서의 의무를 가져라. (주인으로서의 권리는 넘보지 말고)”
내 집처럼 깨끗이 쓰고 아껴 쓰고 내 일처럼 열심히 하고 내 것 마냥 애정을 가지라는 말이다. 이 말의 기만성은 주인처럼 의무를 이행하고나서 주인처럼 권한을 주장했을 때 생겨난다. 주인으로서 권한을 제기하면 단숨에 주인에서 손님으로 강등된다. 아무런 권한도 결정권도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말이 가지는 의미를 꼼꼼히 생각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을’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고, 관계에 대해 그 만큼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동지(同志), 그 가슴 뛰는 말
물론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시키는 일만 하고 어떤 사람은 의도를 파악하고 스스로 일한다. 집 안 일을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청소를 하자고 하면, 아빠와 엄마는 각자 알아서 청소를 해 나가지만, 아이들은 시키는 일만 한다. 여기 있는 것을 저기다 가져다 버리라고 하면 그대로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것은 그대로 둔다. 엄마 아빠에게 청소의 목표는 “집안을 말끔하게 하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시키는 일을 (마지 못해) 처리하는 것”이다. 사실은 하기 싫은데 부모가 시켜서 하는 일이니 어련 하겠는가. 소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기계처럼 일한다고도 할 수 있다. 나도 이럴 때 아이들에게 “같이 사는 집이니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말한다.
기관장들의 말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기관장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적극적으로 일해 주든, 내가 하자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든 해야 무언가를 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런 의미라도 “주인의식”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같은 뜻을 가져 달라”, 즉 “동지가 되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리더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구성원들이 “공통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것이 어떤 가치인지, 어떻게 동기를 부여할 것인지가 리더의 역할이자 능력이다.
따라서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의식만 주인의 것을 가지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이 가치를 설명한 뒤에 함께 그 가치를 향해 나아갈 동지가 되어 달라고 설득해야 한다. “동지(同志)”, 참 가슴 뛰는 말 아닌가. 서로 다른 날 다른 곳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로 같은 뜻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