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각이 많아 슬픈 동물이여
인간, 생각아 많아 슬픈 동물이여 (주인장)
옥아,
생각은 인간을 위대하게도 만들지만, 때때로 족쇄처럼 우리의 손발을 묶고 우리 자신을 갉아 먹을 때가 있다.
인간은 날카로운 발톱이나 강인한 턱을 발달시키는 대신 현상의 이유를 찾아내는 ‘생각’이라는 것을 발달시켜 생존의 승부수를 띄웠다. 우리가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그것을 스스로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의 전원을 끄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된 인간은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의미에 집착하게 되었다.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처음에 “뭐야”라고 묻지만, 이내 “왜”라고 질문을 바꾼다. ‘왜’라는 질문은 우리가 무덤에 갈 때 까지 우리 머릿속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 그렇게 어른이 된 우리는, 현상이 지니는 경이(驚異)를 충분히 느끼지도 못한 채 “왜”라는 질문으로 의미의 탐색을 시도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머릿속에서 현상이라는 객관은 사라지고 의미라는 주관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행위에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좌절하게 된다. 인간의 삶은 그저 꽃이 피고 잎이 지는 것과 같이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하고,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이나 의미 따위는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삶을 숭고하고 의미심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죽음으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우리 인간은 삶의 의미라는 모르핀을 스스로 주입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하고 잃는 순간 실의에 빠지고 우울해진다.
지나치게 발달된 뇌와 그로부터 생겨난 잉여 자원과 시간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동시에 답이 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짐을 짊어지게 했다. 인간은 공허함을 느낀다. 허무함을 느낀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 삶이다. 그것은 외로움이기도 하고 심심함이기도 하고 무력감아기도 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잊기 위해 다른 곳에 주위를 집중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