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함, 편함, 그리고 소홀함
때때로 친함을 편함으로 여기고, 편함을 소홀함의 이유로 핑계 삼을 때가 있다.
옥아,
우리는 때때로 친한 사람을 편한 사람으로 여기고, 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소홀해 여길 때가 있다. 그래서 친한 사이에서 오히려 작은 일로 더 크게 싸우고,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때가 있다. “우리 사이에 그것도 이해 못해줘”라는 생각과, “우리 사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익숙하지 않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친한 사이에 더 편의를 봐 주고 더 잘 해주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소외시킬 때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친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덜 쏟고 결과적으로 소홀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친하기 때문에 약속을 편하게 생각하여 번번이 지각하거 잘 잊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하고 무리한 요구를 가볍게 던지는 지인이 있지 않은가? 멋대로 기대하고 부탁하고 거절하면 화를 내는 절친이 있지 않은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친한 상대일수록 더 잘 해줘야 한다. 그러니 더 잘 챙겨주고 더 깍듯하게 대해야 한다. 약속을 더 잘 지키고, 어기게 되었을 때는 더 미안해해야 한다. 나에게 더 소중한 사람이므로 더 존중해 주고 더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밖에 나가 낯선 이들에게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자신의 가족에게는 짜증을 내고 소홀해 질 때가 있지 않은가? 반가운 친구를 만났는데, 그날 에너지가 이미 방전되어 즐거운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버티다 돌아온 적이 있지 않나.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괜찮다. 힘든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다. 친하고 편하다는 것이 소홀함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친함도 편함도 아니다. 그냥 소홀한 거다. 친한 상대가 나의 소홀함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 합리화의 논리 회로일 뿐이다.
친한 사이는 미안한 마음을 고마운 마음을, 내 마음 그대로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이다. 설령 소홀했다 하더라도 미안하다고 늘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고, 그 말로 인해 다시금 돈독해 질 수 있는 사이이다.
마음을 나눌 수 없는 관계에서의 소홀함은, 침함도 편함도 아니다. 그냥 소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