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기본값을 통찰하자

기본값(default value)이라는 것이 있다.

TV를 켰을 때, TV는 최초에 어떤 채널을 가리킨 채 사용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아무 채널도 아닌 곳에 멈추어 지지직거리는 화면을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품들은 전원을 켰을 때 기본적으로 가리키는 값을 가지고 있다. 기본값이다.

이런 기본값은 우리 사회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법에서 말하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사실 기본값의 문제이다. 범죄에 대한 “의혹”이 생겼을 때 기본값을 “무죄”로 한다는 것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무죄이다. 경찰이나 검찰은 이 기본값을 뒤집을 수 있는 증거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기본값이 “유죄”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의혹을 받은 당사자가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중세시대에 있었던 마녀사냥이 그러했다. 일단 마녀로 몰리면 기본값이 “유죄”이다. 그러면 당사자나 가족들이 “마녀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애초에 마녀라는 존재가 없는데 마녀가 아니란 사실을 어떻게 입증한단 말인가. 결국 그들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단은 죽음 밖에 없었다. 인간과 같이 자신도 평범하게 죽는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했고, 그렇게 강요 받았다.

대부분의 사회적인 “낙인”이 그러하다.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면,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손버릇이 좋지 않다든지, 몸을 함부로 굴린다든지 하는 비방은 이내 하나의 낙인이 되고, 대중은 이유 없이 그런 소문이 났겠어 하며 쉽게 믿어 버린다.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소문을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으로 “빨갱이”라는 낙인이 있다. 일단 “빨갱이”로 지목 되면 기본값이 “빨갱이”가 된다. 당사자는 자신이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권력자들은 이런 대중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방해가 되는 인사들을 빨갱이로 지목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에 대한 인식이다. “빨갱이”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친일파”라고 지목되면, 지목한 사람이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기본값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연구에서 통계적 검증이라는 것도 사실 기본값을 검토하는 과정일 뿐이다. 예를 들어 두 집단을 비교할 때 (대부분의 경우) 기본값은 “차이가 없다”이다. 연구자는 이 기본값을 뒤집을만한 증거들을 모아 “확률적으로 기본값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이려고 한다. 기본값이 잘못 설정되면, 논리 전개에 어려움을 큰 겪게 된다.

개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수많은 기본값들이 내재되어 있다. 물건을 살 때를 보자. 어떤 이는 기본값이 “사지 않는다.”이고, 다른 이는 기본값이 “산다.”일 수 있다. 전자는 사야할 이유가 충분했을 때만 물건을 사지만, 후자는 안살 이유가 분명할 때만 사지 않게 된다. 당연히 후자가 전자보다 씀씀이가 클 수밖에 없다.

식사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사람은 “때가 되면 식사를 한다”가 기본값이지만, 어떤 이들은 “식사를 하지 않는다.”가 기본값인 경우가 있다. 이들은 배가 고프고 기운이 빠지는 등 이유가 있어야 식사를 챙겨 먹는다.

기본값은 성격과도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과 만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본값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즐겁다”이다. 반면 사람과 만나기를 피하는 사람들의 기본값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피곤하다”일 것이다. 기본값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고, 행동을 보고 기본값을 알아챌 수 있다.

개인은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 기본값을 가지고 있다. 반대되는 이유가 없으면 기본값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판단이 쉽고 빠르다. 사실 기본값이 없다면 우리는 심각한 결정장애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잘못 설정된 기본값은 갈등과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한다. “술을 마신다”가 기본값인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늘 술을 마신다. “내가 우월하다”가 기본값인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과 만나지 않을 때는 늘 반말을 하고 남을 깔본다. “나의 이익이 최고다”가 기본값이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를 희생하기 보다는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결정을 한다. “상대방은 나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가 기본값인 사람들은 부탁을 거절 당했을 때 상대를 원망하고, 상대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가만히 있으면 건강 상태고 좋지 않은 이유가 있어야 병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고 노력해야 건강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때때로 인생에서 기억나는 사건들은 나의 “기본값”을 바꿔준 사건인 경우가 많다.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큰 사기를 당하고 나서 “세상은 사기꾼들로 가득하다”는 기본값을 가지게 된다. “세상은 공평하다, 노력은 보상받는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학연이나 지연으로 밀려나게 되면 “세상은 불공평하고, 노력은 배신하기도 한다”라는 기본값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이런 마음속 기본값은 일종의 세계관이자, 결정의 대 전제 같은 것이다. 전제가 다른 사람들이 논쟁을 해 봐야 시간 낭비다. 전제가 다름을 서로 확인해야 조금이나마 이해의 여지가 생기게 된다. 만약 부부가 한 사람은 “주말 나들이는 즐겁다”는 기본값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주말 나들이는 괴롭다”는 기본값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갈등은 예견된 것이다. 이 때 서로의 기본값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왜 그랬지”라고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에 대해 고민할 때가 있다. 이 때 막연히 고민하기 보다는, 그 사건, 그 행동, 그 상황에서 나의 기본값은 무엇이었는지, 너의 기본값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질문해 보자. 서로를 보다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은 아래 문구도 결국 기본값에 대한 가르침이다. ( 최종훈 교수의 말, 캘리그래피 작가 임예진 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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