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를 즐기다.
옥아,
요즘 식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우선 술을 먹지 않고 있어.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녁에 혼자 술을 먹는 것이 낙이었는데, 30대 후반이 되자 혼자 먹은 술의 숙취 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야. 혈압도 조금씩 오르고, 혈중 지질도 높아지고. 무엇보다 술이 잘 깨지 않으니까 겁이나더라.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술대신 차를 마시기로 했어.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그러면서 저녁도 먹지 않게 되었어. 일을 시작한 아내가 저녁을 먹고 귀가하면서, 저녁은 나와 아이만 먹게 되었지. 아이의 저녁을 챙겨야 했기에 저녁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정작 아이가 나의 단조로운 식단에 실증을 내고는 잘 먹지 않는거야. 아이가 저녁을 잘 먹지 않으니 나 역시 차리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저녁을 먹지 않게 되었어.
이 두가지 식생활 변화로 인해 나는 잊고 있었던 ‘공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 돌아보니 최근에 “배고프다”는 느낌을 받아보지 못했더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보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기 전에 끼니를 챙겨 먹다 보니 그린 된 것이겠지.
배가 고프다는 느낌 보다는 머리가 아프다, 피곤하다는 느낌을 무언가 먹어야 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 왔었던 거야. 하지만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 놀고 나면 자주 공복감을 느끼곤 했었지. 오래전에는 자주 느꼈었지만 최근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그래서 잊고 있었던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배가 고픈” 이 공복감이 반갑게까지 느껴졌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이 공복감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빨리 해소하는데 급급해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야. 공복감이 생기면 변화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흥미롭기까지 하더라. 냄새에도 더 민감해 지고, 갑자기 먹을 것을 갈구하게 되고 말이야. 무엇보다 이 배고픔이 ‘나’라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날것 그대로의 느낌, 인류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인 정서라는 점이 신비롭게 느껴졌어.
공복감과 친해지면서 몸도 좀 변하기 시작했어. 우선 대변 상태가 좋아지더군. 대변이 자주 묽고 풀어지곤 했는데, 저녁을 먹지 않게되자 오히려 모양이 좋아지기 시작했어.
가장 큰 변화는 감정적인 것이야. 사실 몇해 동안 회사 일을 많아 번아웃 상태였거든. 그렇게 몇년간 무기력에 시달렸어. 우울증이 아닐까하는 걱정까지 들었지. 그런데 이게 마음을 고쳐 먹는다고 빠져나올 수 있는 수렁이 아니더라구. 책을 읽고 전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도 쉽게 바뀌지 않더라구.
그런데, 술을 끊고 저녁을 먹지 않으면서 무기력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듯 해. 아주 힘이 나고 쾌활해 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한 감정은 많이 사라졌어.
흥미롭게도, 공복감은 불쾌한 느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공허감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삶에는 공허감이 있지. 어떤 사람은 가끔씩 느끼고 어떤 사람은 늘 느끼고. 어떤이는 이 공허함을 피해 즐거운 일을 찾고, 어떤이는 이 공허함을 해결하겠다고 구도의 길을 떠나기도 하지.
하지만 이 공허감도, 배고픔과 마찬가지로 불쾌한 느낌만은 아니지 않을까.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 무언가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이 아닐까. 이 공험감으로 인해 인간은 창의력을 발휘해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삶을 헌신하는 것일거야.
채우는데 익숙한 요즘, 이 “비어 있는 느낌”은 전보다 더 낯설고 불쾌할 수 있어. 하지만 공복감, 심심함, 무의미함, 등의 공허감은 흥미롭게도 모든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느낌이야. 이런 원초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우리게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