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행복의 기원
고백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행복”이라는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대학 때는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때에 행복을 느끼는지 캐묻고 다녔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 행복의 감정을 느끼는지 정말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여러가지 대답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달콤한 케익을 먹을 때야”라는 친구의 답변이었다. 단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먹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답변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그 친구의 답변이 떠오른다. 아내와 딸이 아이스크림이나 달콤함 케익을 먹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행복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입에 닿는 행복이 아니라 보는 행복이지만 말이다.
나는 스스로 감정이 하향평준화 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감정이 침잠된 편이다. 그래서인지 일년에 한 두번, 그리고 몇년에 한 번 정도는 감기처럼 심한 우울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 때가 되면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거나 하던 일을 때려 치울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조용히 그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런 때가 되면 주변의 조언에 따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거나 낯선 곳에 가보거나 몸을 움직여 보거나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잠시는 즐거웠지만, 근본적인 공허감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나마 그런 시간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일은 감정과 마음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었다. 20대에는 불교나 명상에 대한 책을 읽었었고, 지금은 뇌나 마음에 대한 책을 읽는다. 나에게는 이런 책들이 일종의 비상약품 같은 것이다.
최근에도 마음에 그런 징조가 보여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두 권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책들에 대해 기록해 두기 위해 글을 남겨 둔다.
내용
그 첫번째 책은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이다. 평이 좋아 사 두기는 했지만, 그저 그런 행복론을 설파하는 책이라고 여겨서 펼쳐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얇은 두께(?)에 끌려 서두를 읽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책의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아니,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같다.
책은 행복 심리학자인 저자가 진화라는 관점에서 행복을 고찰한 결과를 담고 있다. 필자는 그간 행복에 대한 탐구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다소 사변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지적하며, 행복은 구름 위의 무엇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며, 행복이라는 감정은 생존과 번식을 하기 위해 진화의 흐름 속에서 발명된 의식 속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010)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에 주목해 왔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저자는 진화의 여정에서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것이 600만년 전인데, 인간이 문명을 이룬 것은 6천년 전 정도(037)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각하는 모습’이 주목 받아 왔던 이유에 대해, 필자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 중에서 자신의 의식만을 스스로 관찰할 수 있으므로 해답을 여기서 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한 취객이 자신이 잃어버린 열쇠를 밝다는 이유로 가로등 밑에서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팀 윌슨의 말은 이러한 핵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팀 윌슨 Tim Wilson)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 같은 낯선 존재이다. (023)
저자가 인간이 동물이라는 점을 애써 설명한 것은, 인간이 의식을 통해 경험하는 생각이나 감정들은 모두 뇌에서 만들어낸 것들이고, 뇌가 그것을 만들어낸 목적은 동물로서 인간이 가지는 목적인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 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생각과 경험들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전제 조건 위해서 탐구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016)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에서 만들어내는 마법과 같은 놀라운 ‘쇼’라고 할 수 있다. (017) 사과의 빨간색처럼 행복감도 뇌에서 합성되 경험이다. (017)
저자는 행복에 대한 관점을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__에서 __다윈적인 관점 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는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본데 반해, 후자는 행복을 진화를 위한 수단으로 본다. 낭만을 버리고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견해와 사실을 구분하고,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이유 없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046)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일 뿐이다. (056)
우주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인간을 바라 보았을 때, 인간이 가지는 특성들은 모두 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특성들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진화의 목적과 동일하다. 바로 “생존과 번식”이 그것이다. 생존과 번식은 “핀치새의 부리 혹은 공작의 꼬리”로 비유된다. 전자는 개체의 특성이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변화된 예이고, 후자는 생존에는 불리할지라도 번식에 유리한 방식으로 변화된 예이다.
저자는 행복을 심리적 ‘강화물’이라고 보았다. 생존 혹은 번식에 유리한 방식으로 행동할 때 행복이라는 강화물이 나와 행동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마치 동전 탐지기가 동전을 찾았을 때 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행복이라는 강화물이 주어지는가. 저자는 바로 사람과 어울릴 때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을 압축한다면 나는 “The untimate SOCIAL machine”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085)
우리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인간은 진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 관계를 잘하기 위해서 뇌를 발달 시켰다. 저명한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는 뇌의 설계 목적을 “인간 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인간을 “뼜속까지 사회적이다.(Social to the core)”라고 하였다.(085)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 역시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를 제안하였다. 필자는 인간 관계를 잘 했을 때 뇌 속에 나오는 ‘강화물’이 바로 행복이고, 잘 하지 못했을 때 주어지는 경험이 “고통”이라고 정리한다.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151)
이 책의 키워드는 “생존과 번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192)일 것이라고.
감상
수학에는 최적화 문제라는 것이 있다. 조건과 변수가 주어졌을 때, 전체 함수의 값을 최소 혹은 최대로하는 파라미터의 값을 찾는 문제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사실 이런 최적화의 문제들이다. 소위 정답 없이 “균형”을 맞추어 “조화”롭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문제들은 실상 이런 최적화 문제들이다. 사회생활과 가족의 일을 조화롭게 하는 것, 물건을 살 때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해 ‘가성비’를 최대로 하는 것 등이 최적화의 예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의 설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변수에 대한 최적화 문제의 여러 답안이다. (주인장)
인간 역시 그러하다. 최근 연구들은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결국 생존을 위해 뇌를 고도화 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산물(by-product) 혹은 그로 인한 부작용(side-effect)이라는 점을 이야기 한다. ‘나’라는 의식이 운전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탑승객이었다는 것이다.
의식은 진화의 부작용(side-effect)이다. (주인장)
이런 관점은 행복이나 사랑을 추상적인 개념에서 지상의 경험으로 끌어 내린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경험을 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사랑은?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라는 말이 된다. 경상도 남자들의 “내 아이를 나아 도”라는 말이 본질이 아닐까. 행복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족이라는 단어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사랑은 상대가 생존이나 번식을 함께 하고 싶은 대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뇌의 신호다. (주인장)
메모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부분 몇가지를 적어 둔다.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은 뇌의 동일한 부위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진통제를 주면 사회적인 고통도 경감된다.(089-091)
‘100일의 법칙’ :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들과 나쁜 일들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약 3개월이었다. (109)
‘긍정 부정 정서의 독립성’ :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에 기여하는 요인들이 서로 다르다. (115)
외로우면? 추워지고. 산도 더 높아 보이며, 상처도 더 늦게 아문다. 반대로 따뜻하게 하면 위로움이 경감된다. (148-149)
이미지 출처 : 알리딘 인터넷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