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은 정신을 지배한다.
어린 시절 ‘오락실’은 위험한 곳으로 비행 소년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그렇게 들었다. 어줍지 않게 드나들었다가는 무서운 형들에게 구석에 몰려 돈을 뜯기는 그런 곳 말이다. 정작 그런 곳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 이야기 만으로 나는 오락실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간히 친구들과 섞여 오락실에 들어갔었고, 코 묻은 돈 백 원 이백 원으로 한 두 판 게임을 했었다. 하지만 이내 죽고 말았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오락을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 컴퓨터를 통해 오락실 게임들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추억이 있는 1945라는 게임을 해 보았다. 동전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비행기가 죽어도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다시 버튼을 누르면 ‘이어 시작하기’라는 훌륭한 기능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충분한 ‘동전’이 준비되고 나니 나는 더이상 오락을 못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최종 보스와의 대결에서 당당히 승리할 수 있었다.
동전이 2-3개 밖에 없는 아이와, 동전이 무척 많은 아이는 게임을 하는 자세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동전이 몇 개 밖에 없는 아이는 한 판 한 판이 피를 말리는 승부의 연속이지만, 동전이 많은 아이에게는 최종 보스와의 만남은 당연한 것이고, 다만 얼마나 적은 동전으로 만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만약 두 아이가 경쟁을 한다면, 누가 이기게 될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전이 많은 아이가 언제나 이기게 된다. 세상은 동전을 얼마나 사용했는지보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동전 걱정을 안 해 본 이들을 만날 때면, 벨이 꼬인다. 이들은 긍정적이고 성격이 좋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본다. 너무 좋은 형이자 친구이자 동생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왜 나는 동전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왔을까. 왜 나는 그렇게 안달볶달하며 살아 왔던 것인가. 왜 나는 이렇게 성격이 안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