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에서 다시 삶으로

예나 지금이나 앎은 인간 사회의 미덕이다. 해박한 지식은 높이 평가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더 많이 알고자하는 노력을 좋은 일 옳은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앎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앎의 목적은 삶이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앎이 권장되는 것이다.

앎과 삶이 분리되었을 때 앎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한문을 잘 해 사서와 삼경을 도루 꿰고 있는 분을 알고 있다. 그는 한문을 못하고 성현의 글을 잘 모르는 이들을 늘 열등하다고 비난한다. 성현께서는 스스로 겸손하고 타인께 상냥하라고 하셨을 텐데. 사서 삼경에 통달하여 도달한 곳이 그렇다면 나는 무지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떤 광고를 보니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알아야 한단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무슨 수로 그럴 수 있겠는가.

때때로 우리는 무지라는 이름의 굴레를 쓰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다 못해 타인을 괴롭힌다. 내 삶과 상관 없는 잉여의 앎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몰라도 좋다. 몰라도 괜찮다.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필요할 때 알아가면 된다. 이미 풍요롭게 살고 있다면 앎은 선택이요 공부는 취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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