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장사가 돌아왔다

우리말에 “약장사 같다.”, “약을 판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잘 모를 것이다.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 가면 의례 무좀약부터 관절통약 나아가 만병통치약을 파는 가판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종로5가에서 종로3가 쪽으로 가다보면 행인들이 모여 있고 그 중심에는 늘 약장사가 마이크를 걸고 재미난 입담으로 약의 놀라운 효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하는 사이사이 “애들은 가”하는 말이 추임새처럼 들어간다. 그들의 화려한 언변은 행인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뱀이나 원숭이 같은 동물을 동원하기도 하였고 효능을 뒷받침할 목적으로 신기한 사진을 전시하기도 했기 때문에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런 곳에서 누가 약을 사겠는가 싶겠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있다보면 종국에 약을 사기 일쑤다. 약을 사지 않으려면 너무 늦지 않게 그곳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들이 파는 약이 효과가 없거나 과장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지 지금도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를 현혹시켜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과 행동을 “약장사 같다.”, “약을 판다.”라고 표현한다. 물론 나도 어리기 때문에 모두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시장통에서 약장사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나는 의외의 곳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세련된 SNS 사진 속에서, 뉴스 부스를 연상시키는 youtube 동영상 속에서. 그들은 전문가라는 명패를 들고 나와 믿음직한 이력을 드러낸다. 신뢰감 주는 복장과 말투를 갖추고 나와 전문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하며 무언가를 해야하는 이유, 무언가를 사야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하나의 글, 하나의 동영상이 끝나고나면 비슷한 주제의 컨텐츠가 나에게 다시 추천된다. 이제 약장수는 장터나 시장 골목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핸드폰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수 많은 약장사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무언가를 홍보하거나 주장하는 유투버나 SNS 인플루언서가 모두 약장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양심적이고 신념을 가진 이들도 있다. 그렇지 않은 극히 일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장통에서 이름 모를 약이나 작은 물건을 사던 때가 오히려 좋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약장사들은 집을 팔기도 하고 주식을 팔기도 하며 투자를 유도하기도 한다. 다만 약장사의 확성기는 그 어느때 보다 크다. 사실상 제한이 없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너무 늦지 않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 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을 사고 있게 될런지 모른다.

약장수는 강요하지 않는다.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자신의 몫이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기 전에, 그들이 약장수가 아닌지 의심해보자. 그리고 행동의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나의 몫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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