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 京兆華原人이니 幼稱聖童이라 隋 文帝 召하되 不拜하고 太宗이 卽位에 召見하야 拜諫議大夫하니 固辭하고 隱太白山하야 學道養氣하야 求度世之術하고 洞曉天文하며 精究醫業하야 著千金方三十卷과 脈經一卷하되 獨於傷寒에 不及하니라 朱子의 小學箋註에 謂 思邈이 爲唐名進士어늘 因 知醫로 貶爲技流하니 惜哉라 孟詵 盧照隣이 師事之하야 與論心欲小 膽欲大智欲圓 行欲方之語하니라.
당나라 경조(京兆) 화원(華原) 사람으로 어려서 신동이라 불렸다. 수나라 문제(文帝)가 불렀으나 제수받지 않았고, 당나라 태종(太宗)이 즉위하여 불러 보고 간의대부(諫議大夫)를 내렸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태백산(太白山)에 은거하며 도(道)를 배우고 기(氣)를 기르며 신선이 되는 방법을 구하였으며 천문(天文)에 달통하였다. 의술을 자세히 연구하여 《천금방(千金方)》 30권과 《맥경(脈經)》 1권을 저술하였으나, 상한(傷寒)만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주자(朱子)는 소학전주(小學箋註)에서 “손사막은 당나라의 이름난 진사(進士)였으나 의학자로 알려지게 되어 기술을 쓰는 부류로 폄하되었으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맹선(孟詵)과 노조린(盧照隣)이 그를 스승으로 섬기고 “마음은 소박히 하고 담력은 커지게 하며, 지혜는 원융하게 하고 행동은 방정하게 한다.”고 함께 논한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