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機, 仲景乃其字也. 擧孝廉, 官至長沙太守.
※ 장중경이 장사태수를 지냈다는 최초의 언급
張機字仲景, 南陽人也. 受業於同郡張伯祖, 善於治療, 尤精經方. 擧孝廉, 官至長沙太守, 後在京師爲名醫, 於當時爲上手, 以宗族二百餘口, 建安紀年以來未及十稔, 死者三之二, 而傷寒居其七. 乃著論二十二篇, 證外合三百九十七法, 一百一十二方, 其文辭簡古奧雅, 古今治傷寒者, 未有能出其外者也. 其書爲諸方之祖, 時人以爲扁鵲ㆍ倉公無以加之, 故後世稱爲醫聖.
장기의 자는 중경(仲景)으로 남양(南陽) 사람이다. 같은 고향 장백조(張伯祖)에게 수학하였고 치료를 잘하였으며 경방(經方)에도 정통하였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벼슬이 장사태수(長沙太守)에 이르렀고, 후에 경사(京師)에서 명의가 되었다. 당시에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고 여겨졌지만 일가 2백여 명 중 건안(建安) 원년[紀年] 이후 10년이 못되어 3분의 2가 죽었으며 상한이 그 중 7할이었다. 이에 상한론 22편을 저술하였는데, 병증 외에 모두 397가지 치법과 112가지 처방이 있었다. 책의 문장이 간략하고 예스러우며 심오하고 법도에 맞아 고금에 상한을 치료했던 이들이 그 이외의 것을 낼 수 없었다. 그 책은 모든 방서의 효시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편작(扁鵲)ㆍ창공(倉公)도 이 책에 덧붙일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후세에 의성(醫聖)으로 칭송되었다.
字는 仲景이니 東漢 南陽人이라 擧孝廉하야 官至長沙太守하고 作傷寒論하야 醫方이 大備하니 扁鵲ㆍ倉公이 無以加焉하고 後世에 稱爲醫聖이라 其門人에 衛沈이 撰四逆三部厥經及婦人胎臟經 小兒顱𩕄經方하니라.
자는 중경(仲景)으로 동한(東漢) 때 남양(南陽) 사람이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벼슬이 장사태수(長沙太守)에 이르렀다. 《상한론(傷寒論)》을 지어서 의방(醫方)이 크게 갖추어지니 편작(扁鵲)ㆍ창공(倉公)도 덧붙일 것이 없을 정도여서 후세에 의성(醫聖)으로 칭송되었다. 그의 문인인 위침(衛沈)은 《사역삼부궐경(四逆三部厥經)》ㆍ《부인태장경(婦人胎臟經)》ㆍ《소아노신경방(小兒顱𩕄經方)》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