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말하기, 그리고 의도 숨기기
이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그것을 거시기해서 자신의 의도를 거시기하면 거시기하니까 거시기하자
나는 대한민국에서 35년을 넘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살이로 말하자면 베테랑인 셈이다. 국적도 한국인이고 한국말도 잘한다. TV 뉴스에서 “관행”이라고 포장하는 회사나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전후 사정을 알 만큼 적절히 세속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아직 나에게 적응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말하기 방식이다.
우선 경제적 말하기다. 경제적 말하기는 말 그대로 전후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가능한한 짧게 말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는 아이들의 “울음”이다. 울음 소리를 들은 부모는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모로 고민해야 한다. 경제적 말하기는 발화자에게는 경제적
이지만 청취자에게는 매우 비경제적이다.
전형적인 경제적 말하기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에 대해 사용하는 지시대명사를 아무 때나 남용해서 생긴다. 아내가 “그것 좀 줘”라고 이야기 하거나 “ 직장 상사가 “그때 그거 어떻게 되었죠?”라고 물어오면 참 난처하다. 2-3번의 질의 응답을 거쳐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적 말하기의 주로 “의도를 감추기”위해 사용된다. 주말 점심에 종종 라면을 끓여 먹는데, 가끔 아내가 “점심에 라면 끓일꺼야?”라고 물어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라면을 먹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 라면 말고 다른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왜”라고 되물어 “그냥”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면 의도를 감추고 경제적으로 말하기의 2중 콤보가 완성된다.
경제적 말하기를 통해 의도 감추기
는 광고나 코미디의 단골 소재다. 여자친구가 “나 살쪘어?”라고 묻거나 상사가 “점심 뭐 먹지”라고 물어오는 경우다. 화자가 의도를 가지고 짧게 물었기 때문에 상대방도 모호하게 대답해야만 화를 피할 수 있다.
의도를 감추고 경제적으로 말하기의 나쁜 점은 숨은 의도가 있으나 질문 자체는 열려있다는 것이다. “점심 뭐 먹지”라는 질문은 주관식 질문 같지만, 사실 상사 머리 속에는 한 두 가지의 객관식 답안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관식인 줄 알고 자유롭게 답했다가 눈치 없는 사람 취급 받기 일쑤다. 여자친구의 질문은 더 어려운데, 상대의 답변에 따라 의도가 동적으로 바뀐다.
이런 현상을 잘 말해주는 단어가 한 때 유행한 “답정너”이다. 질문이 어떠 했든 출제 의도는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의도가 숨겨진 질문을 의도가 없는 척 던져오면 화가난다. 상대방의 경제적인 말하기까지는 견디어줄 만 하지만, 노고를 감수한 나의 답변이 무의미하게 변질되면 놀아났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말하기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