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적 말하기, 그리고 개구멍 만들기

이 글의 요지

암시적 말하기가 꼭 빠져 나갈 개구멍 만들기 같다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


경제적 말하기와 종종 함께 쓰이는 것이 암시적 말하기이다. 암시적 말하기는 핵심을 이야기 하지 않고 주변 이야기를 통해 핵심을 전달했다고 암시하며 이야기를 끝내는 경우이다. 암시적 말하기는 종종 빙글빙글 돌려 말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적확하고 명시적인 표현 대신 간접적인 말로 애둘러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암시적 말하기는 경제적 말하기와 쓰임이 다르다. 경제적 말하기가 자기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나아가 자기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쓰인다면, 암시적 말하기는 중요한 말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빠져나갈 여지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암시적인 말하기가 필요할 때가 많다. “라면 먹고 갈래?” 같이 상대방의 의중을 알 수 없을 때 사용하면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또 “내 아를 나아 도” 같이 직접 이야기하기 부끄럽거나 껄끄러울 때 대화를 부드럽게 해 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암시적인 말하기는 같은 한국인인 나로서도 감수하기 힘들 만큼 공공연하다. 특히 책임을 모면하려는 측면에서 단연 많이 쓰인다.

얼마 전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줄을 서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 앞에 끼어 들었다. 좀 이상하게 바라봤더니 주문 하는 줄을 착각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로비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듯 길게 설명하셨다. 하지만 정작 미안하다는 말은 빠졌다. 글로 따지자면 주제어가 빠지고 뒷받침 문장들만 있는 셈이다.

듣는 나는 아주머니의 간접적인 해명을 듣고 저 사람이 미안해 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말을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공식적으로는 미안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고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한 우리나라 정서 상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암시적인 말하기가 공적인 부분에서 사용되면 오해를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소모적인 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얼마 전에 공공기관에 불합리한 행정처리에 대한 민원을 제기 했었다. 담당자는 자신과 기관의 사정을 퉁명스럽게 반복해서 설명할 뿐이었다. 냉정하게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미안하게 되었다. 다음부터 개선하겠다.거나 미안하게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좀 이해해 달라고 하면 안될까? 오랜 시간 소모적인 대화로 감정만 상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느낌인지 모르겠다. 수 년 전부터 문맥상 분명한 말들도 나중에 주어가 없다느니 하는 억지로 논쟁 아닌 논쟁을 일으켜 본질을 흐리는 일이 많아 졌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두 그럴 필요는 없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부디 모호한 말 뒤에 숨지 말았으면 한다.


한국에서 말하기 시리즈

  1. 경제적으로 말하기
  2. 암시적으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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